소위 "쓰잘데기 없는 번뇌망상"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지칭하는 그 대상의 소유자에게는 결코 쓰잘데기 없는 번뇌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 드물다.
그 사람에게는 "아주, 아주 심각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처리하기 힘들면서도 처리할 수가 없는 괴로운 근심, 걱정, 무거운 마음"이다.
따라서 그걸 자기 두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쓰잘데기 없는 번뇌 망상"이 없으니, 그런 소리를 아무리 들은들....
또, "쓰잘데기 없는 번뇌 망상"이라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두뇌 속에도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으니 아무리 소리쳐 낸들....
결국 "번뇌", "망상", "번뇌망상"이라는 단어의 뜻 부터 제대로 정립한 다음에 그걸 어찌할 것 인지 여하를 논해야 마땅하리라.
번뇌(煩惱) :두뇌를 번거롭게 하면서 해결도, 해소도 되지 않는 의식의 일부인 상대적 평판인 마음(意).
망상(妄想) : 과학적, 합리적, 정상적인 예측, 예상, 가상이 아닌 터무니 없는 상상.(가변성, 가능성, 가닫성이 없다고 아는 상상)
번뇌망상(煩惱妄想) : 있었지도 않았고, 있지도 않고, 있을 것 이라는 합리적 근거도 없는 망상을 "있는(은, 을) 것" 처럼, 그 것에
부가되어 있는 평판(意)을 실현하려는 욕망(意慾)이 씨앗인 의식.
(예컨대,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배우자가 바람 피우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내 뒤를 감시하는 것 같다",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는
망상은 그걸 품고 있는 사람으로선, 망상이라고 모르기 때문에 그 에게는 망상이 아닌 것 처럼이다)
망상은 그걸 품고 있는 사람으로선, 망상이라고 모르기 때문에 그 에게는 망상이 아니다.
번뇌도, 번뇌망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번뇌망상을 해소하려면 가장 먼저 "아하 이 마음이 망상이구나" "이 마음(망상)이 실제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번뇌구나" 하는 것 으로
필요, 충분하다.
여기서 "필요(必要)"를 말 하기 전에 "쓸데(所用)" 와 "쓰일 데(所要)"부터 말 하고자 한다.
예컨대, 곡식은 먹는 음식을 만드는데 쓰고(所用), 음식은 영양을 충족하는데 쓰인다(所要)
소요가 먼저이고, 소용이 그 뒤를 따르는게 정상이다.
따라서 소요없는 소용은 오판의 산물(?)일 뿐, 실질로서의 소용이 아니다.
소요있는, 소요에 적정한 정도를 필요(必要)라 한다.
소요중에서도 "반드시"라는 평판(意)이 붙는 것을 필요라 한다.
그렇다면 "필요 여하를 구별하고 그 정도를 책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각 자의 두뇌 속에 정하기(의식화 하기) 나름이지만.....
여기서는 자기의 삶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만 할" 또는 "반드시 없어야만 할" 이라는 말을 붙일만 한 것(종류)과
그 정도(질과 양)를 필요라 하련다.
이런 식으로 필요(必要ㅊ)를 정의해 놓으면, 필요의 범위가 매우 줄고, 축소된다.
고로 그걸 실행, 실현하기도 비교적 단순해서, 쉽고, 수월해 진다.
환언(換言)하자면, "필요"를 전혀 정의하지 않거나, 무제한적으로 필요를 남발하는 식이면 그 범위가 복잡하고 정도가 높아져서
실행하기도 어렵고, 힘들고 실현(성취) 가능성도 낮을 수 밖에 없다.
소위 전자로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쉽지만, 후자로는 불평, 불만, 불행, 불화의 회오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현명한 정신은 필요를 [자기의 삶을 정상적으로 유지함]이라는 기준에 엄격히 고정하고 그 종류와 정도를 한정하는 반면에,
우매한 정신은 필요를 그 어떤 기준이나 척도도 없이 남발한다.
단적으로 "꼭 필요한 것, 꼭 필요한 정도"를 전자에서는 매우 한정적이지만, 후자에서는 자의적(恣意的), 무제한이다.
부(富)의 무한적 확장을 당연히 좋다고 아는 사람과, 필요한 것을 필요한 정도로 한정하는 사람의 개인적, 인간관계는 어떨까...
1.근심, 걱정, 그리움, 원망, 미움을 만들고, 가지고, 씨름할 필요가 있을까?
2. 그런 걸 만들지 않을, 가지지 않을, 무시하고 버릴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잘 하겠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나 !?" 하는 저급한 수준의 정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니......
"맘대로는 안 되지만, 그 마음을 내 하려는대로 다루기는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아채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