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번뇌에 빠지고, 빠져서 헤어나려 하지 않으면서, 벗어나기를 바랄까?
바로 그 자신의 우매(愚昧) 때문이다.
[내], 스스로(自)로서의 깨달음(覺)이 없다(不覺)
스스로의 본분이 무언지를 모르면서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못한?)다.
저(自) 아닌, 저(自)에게 알려지는 "나(我意識)"가 자신처럼 여겨진다.(錯覺).
그 "나(我)"의 처지가 자기라는 사람 자체나 내(自) 처지, 상황, 상태인 것 처럼 혼동된다.
그러니 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주도하여 하지 않고(못 하고?) "나(我意識)"에게 수동적, 피동적, 소극적, 타성적으로
방임된다.
[내] 스스로 두뇌를 상대로 [말(제8自意)]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 하고, 두뇌에서 형성되어서 [내]게 알려지는
언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 하여 맹신, 맹종에 빠진다.
그 결과가 바로 다음과 같은 일 이다.
1. 남 북이 통일되"어" 고향도 가고 평화롭게 "산다", "이" 얼마나 "좋은가 !"
2. 남 북이 통일되"면" 고향도 가고 편화롭게 "산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위의 두 문장에서 "...." 부분을 세밀히 비교해 보시기를........
둘 다 가상(假想)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선 같지만,
1은 마치 눈 앞에 실제로 펼쳐 져 있는 현실처럼 혼동되고 있고.(일종의 幻想과 같다)
2는 가상임을 알고 있으니 현실이 아님도 알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정신이 현명하다면 위의 1과 같은 소리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겠지만, 만약에 두뇌에서 그런 소리가 일어나서
알게 되더라도 일소(一笑에 一掃)하고 말리라.
그렇지만 정신이 우매하다면, 제 앞에 등장해 있는 대상 세계가 현실성(현실, 실형가능성)이 있는지를 구별할 줄 모른다.
꿈을 꿈이라고 모르고, 영화를 영화라고 모르고 현실상황 이라고 혼동되는 것과 같다.
"남북 통일"이라는 소리에 걸맞은 장면(상상적인 識)이 떠 오르면 그게 현실인 줄 알고 엄청난 단맛(意味)을 경험한다.
또, 그렇지만 아무리 달콤하고 황홀해도 현실성 없는 환각적인 맛에 빠지면 백해무익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런 정신수준 상태의 사람이 그런 환상을 포기하거나, 그 환상적 경험에서 벗어나려 하겠는가?
"되어"와 "되면"이;라는 글자 하나 차이가 바로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데도 우매하면 그걸 구별하지 못 한다.
누군가가 "그건 꿈(환상)이야 깨어 나라" 하면 스스로 깨어 나려 하겠는가?
만약애 남 때문에 깨어 나서 꿈이었음을 알게 되면 고맙다 할까, (단맛을 잃게 되었다고)원망할까?
모든 번뇌는 그 속에 괴로움과 반대되는 즐거움(樂)을 품고(?) 있다.
단지, 현실성이 없거나 너무나 거리가 먼 즐거움이지만, 그렇다고 모르면 현실처럼 동일시 되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우매한 정신은 [번뇌=즐거움]를 벗어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탐익한다.
정신의 우매,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벗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