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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理解)하기와 되기.

나 아닌 내 2023. 10. 6. 08:59
  • 이해(理解), 직역하자면 "이치(利)대로 풀이(解)"하여 안다는 뜻 이다.
  •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등재되어 있고.
  • 1.사물의 본질과 내용 따위를 분별하거나 해석함
  • 2.남의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임
  • 3.말이나 글의  따위를 알아들음
위의 1(본질과 내용, 해석), 2(사정이나 형편, 받아들임), 3(뜻, 알아 들음)에
공통적인 것은 형이하(形而下)가 아닌 형이상(形而上)의 차원에  속한다는
것 이다. 

감각기관이나 그 연장인 기구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을 "형이하", 접근할 수

없고 논리적 추리로만 알수 있는 것을 "형이상" 이라고 한다면,.

이해는 형이상에 속하는 영역이지만, 그 뜻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전에 실린 뜻이 대체로 그러 하다.

 

"이해"의 이(理)는 주로 중국 명 나라 시대의 성리학에서 비롯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의 퇴게, 율곡등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된 이기론

(理氣論)에 등장한다.

 

이(理)와 기(氣)를 구별해 놓고 그 둘이 항상 함께 한다는 일원론과 그 둘이

따로라는 이원론, 구별되지만 하나로 있다는 이원적 일원론도 있다.

 

요약하자면, 모든 만물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은 이(理)와 기(氣)의 작용인데,

이(理)는 기(氣)를 운전하는 법칙(설계)이고, 기(氣)는 이(理)에 의하여 움직이는

작용이라고 본다.

 

예컨대, 나무에 열린 사과가 다른 작용이 없는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기(氣) 작용이고, 그 것을 일으키는 중력이라는 법칙이 이(理)이다.

분노하여 얼굴에 벌겋게 충혈된 것이 심기(心氣)의 작용이고, 그 작용을 만든

원인이 심리(心理)라는 법칙이다.

 

어쨌거나 모든 움직임(氣 작용)은 그걸 일으키는 법칙(이치)의 외형이고,

모든 법칙은 그 작용으로 나타나는 기(氣)의 보이지 않는 내면이다.

이치없는 기 작용 없고, 기 작용 없는 이치도 없다.(이기 일원론, 이원적 일원론)

 

이상 "이해(理解)"를 이해하게 되면, 이해하기를 시도하기가 어렵지 않다.  

먼저, 외형(氣작용)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 그 것을 일으킨 내면(理법칙)을

         탐구한다.

다음, 내면의 법칙(理)은 과학적, 개관적 사실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탐구로만 해명이 가능하다.

 

기(氣)의 흐름(作)을 정확히 본 다음에, 그 흐름을 일으키는 것이 이(理)로

있구나....하고 추리하여 아는 것 이지, 그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이(理)를

알 길이 없다.

 

누군가가 웃고(웃음의 계속) 있으면 그걸 일으키는 마음(心理)가 있구나...

기뻐하는 마음이건,(미소)

쓰디 쓴 마음이건,(고소)

조롱하는 마음이건(조소) 

 

사람의 표정, 언동, 행위 그 대부분이 후천적으로 형성된 심리의 표현이다.

물론, 본래의 성질(본성, 본능)에서 나오는 생리의 표현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끼리 겉으로 드러나서 직접 알 수 있는 것은 외면 뿐 이다.

내면은 드러나는 외면으로 추리할 수 있을 뿐 직접 알 길이 없다.

"이러 저러한 내면이 있다"는 말은 외면일 뿐, 결코 내면(심리)이 아니다.

 

그런데도, 직접적인 언동도 없이 또는 직접적인 언동과 다르게 

"몰라 준다",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섭섭하다는 사람과,

말과 행동이 있어도 마음을 알기 어려운데 그런 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알아 줄 수 있는, 이해해 줄 수 있는 근거도 주지 않고서 무슨 요구를

하냐는 사람의 불화, 언쟁이 제3자라도 쉽게 이해되고도 남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