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自責)' 이라는 단어의 뜻(두뇌 속 意識)에 여럿이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의 두뇌 속 그 뜻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는 필자 나름의 뜻일 뿐 이다.
[자책] : 내 스스로(自)에 지워 진 선천적인, 본래의 책임(責)이란 뜻 이다.
따라서 [내] 스스로 인정하건, 부인하건 감면이 불가능한 책임이다.
[자유] : 내 스스로(自)의 결정에 말미암아서(由) 정하는 뜻(意)의 방향(志)
이라는 자유의지(약칭하여 자유)와 자연스런 짝 이다.
자유가 있는 만큼 책임도 있다.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
"자책" : [내] 스스로 만들었건,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형성되었건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자책(名)에 연결된 정보(識)와 그에 부가된 마음(意)", 즉
자책의식을 약칭하여 자책이라 한다.(타책과 상대적인 뜻)
"타책" : [내] 스스로 만들었건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형성되었건 두뇌 속에
"자기(자신, 내, 나) 아닌 남(너, 그, 이름등)의 책임이라고 형성된 타책의식을
약칭하여 타책이라 한다.
[자책]과 "자책/타책"의 구별.
[자책]은 두뇌 속 의식과 전혀 상관없이, 사람이 창조될 때 부터 그 내부 기관인
두뇌속 정신에 부여된 선천적, 본래적인 완전한 [자유(自由)]의 뒷면이다.
당연히 [자유] 또한 두뇌 속 자유의식인 "자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반면에 "자책"과 "타책"은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없고, 형성되어 있으면
오직 형성되어 있는 그대로로만 있을 뿐, 달리는 전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은 일을 놓고 "누구의 책임이냐?" 하는 물음에 서로의 대답이
같을 수도 다르고 -갑 책임, 을 책임이라고- 상반될 수도 있다.
그 사람(정신)이 아는 "책임"은 [책임]이 아닌 "책임" 뿐 이다.
따라서 선천적인, 본래의, 불변의 [책임]을 알려면, 먼저 그런( [책임]과 같은) "책임"
(의식)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예컨대, "모든 게 선천적으로, 본래부터, 불변으로 내 스스로의 자유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 책임" 이라는 식으로 의식해 놓고 있어야 그렇게 알 수가 있다.
만약에, 두뇌 속 의식계의 경험과 학습의 소산대로 형성된 책임의식이 "나 에겐
전혀 잘못이 없고, 그러니 책임도 없고 모든 책임은 오로지 남에게 있을 뿐" 이라는
식으로 의식되어 있다면 당장은 그렇게 말고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도 부인할 수야 있지만, 인정하건 부인하건 전혀 영향받지 않는
본래의, 불변의 [책임]과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책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차원을 문제로 삼을 수 있으리라.
첫째는, 자기 두뇌 속 "책임(의식)"을 본래의 [책임]과 일치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둘째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다르거나 상반되는 "책임(의식)"을 통합할 기준과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사람의 의사결정은 누구의 무엇이 하는가?
결론만 말 하자면, 각 자의 두뇌 속 정신만이 한다.
부모, 스승 기타의 남 누구도 대신하지 못 한다.(이점 일반적인 상식은 이와 반대이지만)
다음, 사람마다의 의사가 다른 경우의 해결방법과 기분은 무엇이어야 할까?
결론만 말 하자면, 서로의 말로 서로의 두뇌 속에 서로의 삶에 무해유익한 의사를 형성하려는
목적을 만들어서 그 것을 기준으로 의사형성을 논의하여야 한다.(너 좋고, 나도 좋자는 식)
이왕 추호도 벗어 날 수 없는 [자책]이니,
자기라는 사람(주체)의 삶을 필요 유익하게 영위하기 위하여(목적)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식이겠금 관리해야 한다.
복잡하다, 어렵다, 힘에 겹다, 해결이 안 된다는 일이 있을 때
첫째, 자기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둘째 그걸 실현할 방법이 가변성, 가능성, 가당성이 있는가?
셋째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가?
두뇌 속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명령해 보시라,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