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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문제냐, 남의 마음이 문제냐?

나 아닌 내 2007. 3. 14. 14:39

사람은 누구나 의식(소위 마음이라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

사람의 표정과 언동의 대부분은 의식적 소산이다.

 

그런데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이 각 자가 저마다 따로 가지고 있는 두뇌 속에 있으니 엄밀히 말해서 똑 같을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대체로 동일한 공간(예: 지구,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여럿이서 더불어 살다 보니 상당히 많은 정보의 원천들을 비슷하게 접하게 되므로 -의식 중의- 정보(識)에 공통적인 것이 많게 된다.

게다가 같은 교육과 문화적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는 가치관에서 -의식 중의- 의미(意)에도 공통적인 부분이 많게 된다.

 

종합적으로 말 하자면, 하나의 공간에서 더불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두뇌에는 비슷한 의식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 어느 하나의 의식도 똑 같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나 다른 정보(識)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의미(意) 부분에 있어서는 정반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의식이 아무리 똑 같게 하려고 해도, 몸과 몸으로 구별하여 나와 남 이라는 이름(語)으로 구별하는 정보(識)를 가지는 한, 똑 같은 정보란 있을 수가 없다.

최소한 나의 경험이니, 나의 경험이 아니니 하는 말은 있을 수 밖에 없음으로.

 

또 서로의 어떤 정보(識)가 거의 같아도, 그 정보에 붙어 있는 의미(意)는 정반대일 수도 있으니 주장하는 바, 바라는 바, 행하려는 바, 심판하는 바 등이 유사하거나, 다르거나 상반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상대방을 향하여 내 의식을 표현하여 실현하려고 나서면, 상대방의 의식이 내 의식과 어느 정도나 유사하고 상이하냐에 따라서 전개될 상호관계가

정해 진다.

 

그로 인하여 내가 어떤 의식으로 상대를 향하여 뭔가를 요구했을 때, 그의 의식에서 OK반응이 일어나면 나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겠지만, NO 반응이 일어나면 나의 요구는 실현될 수가 없게 되고, 부분적으로 OK와 NO가 섞인 반응이 일어나면 그 문제의 해결 과정이 복잡해 질 것 이다.

 

여기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나의 의식과 상대의 의식이 현격하게 다르거나 상반되기라도 한다면 과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 보다 먼저, 그런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해야 할까, 해결하지 않아도 그만일까?

해결해야 한다면 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해결해야 하는걸까...이다.

 

서로 다르거나 상반되는 의식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우선 세 가지를 가정해 볼 수가 있다.

상대의 의식을 내 의식에 OK하겠금 만들거나, 나의 의식을 상대의 의식에 OK하겠금 만들거나, 서로가 반반씩 타협하여 OK하겠금 만들어 내는 세 가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일 이기도 하다.

내 의식도 상대방의 의식에 OK하게 맞추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상대방의 의식을 내 의식에 OK하겠금 맞추려 하는데 상대가 완강히 반대하면 내가 무슨 수로 그리 할 수가 있으리오.

또 반반씩의 합의라는 것도, 흑과 백처럼 상반된다고 믿는 것을 어느 누군들 포기하려고 할까.....  

 

내 의식을 상대에게 맞추자니 내 의식이 저항하고,

상대의 의식을 내게 맞추자니 상대의 의식이 저항한다면,

그 해결책은 도대체 있을까, 없을까?

 

결론부터 말 하자면 맞추는게 낫다는 의미, 맞춰야 한다는 의견, 맞추고 싶다는 의욕, 맞추려는 의지만 있으면 너무나 쉽게 가능한 일 이다.

반대로 그런 의미를 형성하지 않으면(형성되지 않으면) 그건 -아무리 애를 쓴다고 써도- 불가능 하다.

 

여기서 바로 누구의 의식을 누구에게 맞추는게 이로우냐, 해로우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또, 이롭다느니 해롭다느니 하는 말이 누구(주인)의 무엇(육체? 마음? 정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이냐가 추가로 문제된다.

 

누구의 의식을 누구의 의식에 맞추는 것이 누구의 무엇에 이로우냐(또는 해로우냐)를 가리는 기준에 다음과 같은 것을 세울 수 있다.

 

자기의 생명을 위해? 몸의 건강을 위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정신의 자유를 위해? 그 모두를 함께 위해?

 

상대의 생명을 위해? 몸의 건장을 위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정신의 자유를 위해? 그 모두를 함께 위해?

 

자기와 상대의 생명을 위해? 몸의 건강을 위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정신의 자유를 위해? 그 모두를 함께 위해?

 

위와 같이 열거해 봏고 보니 얼마나 복잡한가?

또, 생명과 몸, 마음, 정신을 위한다는 것이 서로 상충되는 일은 없겠는가?

또, 자기와 상대방 중의 누구를 위할 것 인가, 모두를 위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동의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몰라서 너무나 태연하게 말 하는 것 같다.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미덕이다.

자기부터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

서로 다투지 말고 조금씩 양보해라, 등등으로.

 

그런데 그게 그런 말(소리)만 요란할 뿐 무슨 실효나 실익이 있던가?

그 보다도 먼저 가능하기나 하던가?

 

서로의 마음을 맞추기 어려운 그 원인을 나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서로의 마음이라는 것이, 비록 가치를 창조하는(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에 관하여 의미를 형성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능에는 엄연히 본래적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이나 몸, 정신에 대하여도 소위 마음대로(제 멋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어리석은 정신이 그걸 검토하여 다스리지 못 하고, 오히려 그런 가치대로 맹종하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한 것 이다.

 

예컨대, 생명이 만든 몸의 두뇌 속에 나중에 형성된 어떤 정보(識 -예컨대 이효리를 본 것)에 "내(자기)가 죽음도 불사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사람" 이라는 의미(意)를 부여해 두고 있는 마음이야말로 천륜에의 반역이 아니고 뭐랴.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는 1차적으로, 의식중의 의(意) 때문이다.

그 의미에 따라서 좋다, 나쁘다는 의견, 좋은 것을 가지고 나쁜 것을 가지지 않으려는 의욕, 그걸 실현하려는 의지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견을 쉽게 바꾸지 못 하는 것은 2차적으로 정신이 의미에 빠지기 때문이다.

의식중의 의미(意)를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검토하여 자기의 삶에 봉사해야 할 정신이, 오히려 마음의 의미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해득실조차 무시된채 다투면서 불화하는 것은, 자기와 타인이 모두 같다는 점을 모르고, 다른 점만 보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