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단순하여 알아차리기 쉬우면서,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착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위 제목의 구별이다.
주인의 마음과 마음의 주인공의 구별이다.
주인의 마음이라 함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주인의 소유에 속하는 마음이라는 뜻 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주인이 마음을 창조하고, 사용하고, 수정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무시함에 있어서 주인다움(자유와 책임)을 확실히 깨달아서 알고 행한다는 뜻 이다.
특히 형식적으로는 주인의 마음이지만,
그게 주인의 주인다움(자유, 책임)과 상관없이 타인의 주도 아래에 있거나, 기계적으로 생주이멸하면서 그 주인조차도 사실상 지배 당하는 것과 유사한 상태에 있다면 주인을 지배한다는 뜻 으로 마음에 속한, 마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의"는 소유라는 뜻 이기도 하다.
"의" 앞에 붙이는 것이 주격(主格, 소유주), 뒤에 붙이는 것이 종격(從格, 소유물)이다.
주인의 마음이라 하면 주인에게 속해 있는 마음이라는 뜻 이고,
마음의 주인이라 하면 마음에 속해 있는 주인(?)이라는 뜻 이다.
여기서 주인의 마음과 마음의 주인에 있어서, 그 주인이 같은 뜻이 아닌데도 혼동되는 일이 보편적임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비유하자면, 정비석의 홍길동전에 있어서는 정비석이 -그 소설의- 주인이지만,
홍길동전에는 -그 주인인 정비석은 없고- 홍길동이 -주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나온다.
사람과 마음의 관계에 있어서도 꼭 같은 일이 있다.
나는 마음의 주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라 한다.
마음의 나 라는 말 부터가 없다.
그런데 마음 속에 나가 아닌데도, 나 라고 착각하는 의식이 있다.
소위 아의식이라는 것 이다.
누가 그립다 하는 주인공, 누가 밉다고 하는 주인공이 그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아의식도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과 성질상 다를 바 없는- 마음 속의 주인공이지, 그걸 담고 있는 마음의 주인은 아니라는 것 이다.
예컨대 죽고 싶다는 주인공이 있을 뿐, 나는 오히려 그 주인공에 대한 생사여탈의 자유까지 소유하고 있는 명실 상부한 주인이다.
그런데도, 주인인 나 자신을 망각하는 순간에, 마음의 일개 주인공에 불과한 것을 자기나 자신처럼 여기는 혼동에 빠져서 헤매는 희, 비극이 연출된다.
나는 내 마음을 본다(안다),
진실로는 그 어떤 마음에도 결코 빠질 수가 없는 순수한 정신이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 가거나 빠질 수 없는 것 처럼.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보고(알고) 있다는 것을 망각만 하면 사고(?)가 난다.
마음 속 세상(?)에 빠져서 헤매는 꿈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마치 영화 속에 빠져서 비명을 지르거나 심장마비에 걸리는 것 처럼.
그대는, 그대의 그 어떤 마음에도 속하지 않는 주인이다.
그대의 어떤 마음도 거느리고 있으면서 다룰 수 있는 주인이다.
때문에,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하지 못 하면, 마음의 주인공에게 속한 종 노릇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