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있는 그대로 뿐(唯一) 이지만, 그걸 사람이 두 가지 차원으로 구별해 볼 수가 있다.
그 사람의 두뇌를 경계로 하여 바깥의 차원(이를 사실계라 하자)과 내부의 차원(이를 의식계라 하자)으로.
사실계에 있는 육체의 감각신경을 통하여, 사실계에 있는 순간적 일부와 접촉하여 형성되는 정보(識)와, 그 정보(상상도 포함한다)들 중 특정의 것이 다른 것과 비교 평가되어서 형성되는 의미(意)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 하나의 의식이고, 그 의식(識으로만 있거나, 意識으로 결합해 있거나)들의 전체를 의식계라 하자.
분명한 것은 사실계와 의식계는, 특정 개인의 두뇌를 경계로 하는 구별이므로, 그를 제외한 타인에게는, 타인의 의식계는 외부의 사실계이지, 내부의 의식계가 아닌 것 이다.(물론, 아직은 기술적으로 직접 접촉할 길이 없지만.....)
사람(그의 정신)이 아는 것은, 그 순간에 두뇌 속 의식계 표면에 떠 올라 있는 의식에 국한된다.
다만, 뚜렷하게 떠 올라있는 의식이 있는 가 하면, 빙산처럼 일각만 드러내고 있는 의식도 있지만.....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은, 단순히 식(識)만 떠 올라 있는 경우에는 발생하지 않고, 의(意)가 부가된 식(識, 즉 意識)이 형성되어 떠 올라 있어야 발생한다.
예컨대, 수령한 월급액 300만원의 정보(識)만 떠 올라 있을 뿐, 그 것을 금액으로 500만원이나 200만원과 비교, 평가하여 좋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의미(意)가 연결되어서 "200만원이나 부족하여 불만스런 월급액"이라거나 "100만원이 많아서 만족스런 월급액" 이라는 의식으로 형성되어 떠 올라 있어야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 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에 대한 정보(識)만 떠 올라 있을 뿐, 그의 어떤 점을 타인이나 가정적 기준과 비교, 평가하여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의미(意)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배우자에 관한 기쁨이나 슬픔을 느낄 수가 없는 것 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 하는 모든 의미(意)는, 그 본인의 두뇌 속 에서만 발생하여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 이지, 그 이외의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단순히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외부의 사실계에 그런 의미적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환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칭하는 말이 아니고, 존재하는 그대로를 칭하는 말도 아니다.
사실과 사실에 관한 앎의 괴리가 매우 큰 것을 -여기서는- 환상이라 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안다는 "200만원이나 부족한 300만원"은 있는 그대로도 아니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300만원은 사실이지만 "200만원이나 부족한"은 사실이 아니다.
"200만원이나 부족한"은 사실은 아니지만, 두뇌 속의 의미로는 엄연히 있으니 전혀 없다곤 할 수가 없다.
위의 두가지를 제대로 구별하여 그대로 알면 사실과 앎의 괴리는 없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를 혼동하여 "200만원이나 부족한 300만원" 이라는 사실이 있다고 착각하면 그게 바로 환상이란 것 이다.
마찬가지로 "아무개 보다 월급액이 적은" 이라는 의미(意)는 자기의 두뇌 속 에만 있고, 월급 300만원을 받는 남편은 사실로 있다고 구별하여 알면 환상이 없지만 "아무개 보다 월급액이 적은 남편"이 실제로 있다고 알면 환상에 빠진 것 이다.
모든 기쁨이나 슬픔은 바로 이런 환상때문에 느끼게 된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