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통상적으로 "지금 이 상황이 필요한 선택할 (유일한) 기회"라 하지 않고,
굳이 유별나게 "[지금] [이 상황]이 [필요]한 [선택]할 [기회]라고 한 것은
그 의도 내지는 목적이 있어서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이 상황에서만 살아간다.
첫째, 지금이 아닌 시간에 살 수는 전혀 없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이라고 아는 순간에만 "지금"이라고 알뿐, 그것
말고는 영원 무한인 [절대의 시]를 누구도 "시(時)점", "시간"으로 알 길이 없다.
"시점", "시간" 모두가 두뇌 속 작품(?)이지, 두뇌 밖에 실재하지 않으므로.
시계 위에, 시계 안에, 시계 겉에 시간 비슷한 것이라도 있던가?
단적으로 "지금이, 지금이구나..." 하고 알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게 [지금]
이다.
고로 [지금]을 알려면, 그 어느 순간에라도 "지금"이라고 말하고 아는 수
밖에는 없고, 그렇게 알면 [지금]을 실제로 활용할 수가 있다.
[지금]에만 살고 있으면서 [지금]을 모르면 [지금]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인생을 훨씬 주체적,
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근본적 출발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사람은 누구나 [지금 이 상황]에만 살아갈 수가 있다.
지난날도 나중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순간에는 [지금 이 상황] 밖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단지 [지금 이 상황]은 찰나의 추호도 멈춤이 없이 흐르고(변하고) 있다.
"모든 게 항상 변한다"(諸行無常),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고로 인생을 안전, 건강, 순탄, 조화롭게 영위해 가려면 지금 이 상황의
시간적, 공간적 흐름(변화)을 차려서 아는 일에 성실 또 성실해야 한다.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는 "내일은 영원하다(멀리
있다"라고 실감이나 하려나?
셋째, 인생에는 가까이 둘(유익을 실현할) 필요와 멀리 할(위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기 마련이다.
"필요하다"라고 알지 못 하건, "필요없다"라고 알건 실질적인 [필요]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어떤 [필요]가 있는지 정확하게 검토, 확인해도 그걸 발견, 실행,
실현하기가 쉽고 수월하지 않거늘 아예 어떤 [필요]가 있는지 여부도, 그 정도도
모르거나 거꾸로 "아무 필요도 없다"고 안다면 어떻겠는가는 불문가지다.
그러니 자주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지? 검토, 확인하는 일은 [불필요] 한 일에
귀중한 시간, 노력, 비용을 낭비치 않고 [필요]에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가 있다.
넷째, 사노라면 선택해야 할 일이 적지 않지만, 선택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거나,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고 안다면 선택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나중에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 본들 기차는 이미 떠났는데....
그래서 자주자주 [선택]이라 말하여 스스로 선택권능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기회]는 지금 이 상활 아니고는 언제, 어디에도 없다.
"나중에, 상황이 달라지면 운운.." 함은 스스로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기회]역시 "기회"라고 알아야 실제로 [기회] 답게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자면 자주 "지금이 기회", "기회는 지금"이라는 말을 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기회를 잘 잡아라"라고 말(소리)은 드물지 않게 하고 듣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기회"라고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잡을 수 있으며, 잡을 수 없는 기회를 어찌 놓질 수
있겠는가?
[기회]는 "기회"라고 말하고, "이런저런 기회이구나" 하고 성찰하여 알아야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회]는 외부에서 오거나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기 여하에 달려 있다.
이상 [지금], [이대로], [필요], [선택], [기회] 다섯 단어를 잘 활용한다면
인생을 목적에 부합되게 훨씬 단순, 수월, 합리, 효율적으로 운전해 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너무나 현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