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라 하건, "심리적 와상이나 충격"이라 하건
보통 사람들로선 이해하기조차 어려우니 무슨 수로 스스로
다룰 수가 있겠는가?
대체로 "재경험 하기를 극도로 꺼리고 회피하는 , 부정적인 마음(의미)
이 붙은 의사로서, 체내에 갖 가지 부작용을 유발하고, 생활에 고립,
불편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 같다.
부정적으로 중차대(重且大) 한 마음(슬픔, 불안,두려움, 고통, 미움등)이
생겨 난 실패, 상실, 피해 등등의 기억으로, 다시 떠오르기만 하여도
재경험 하는 것처럼 반응이 야기되니 그로 인한 괴로움이 여간 아니다.
그래서 잊으려고, 대결하여 이기려고 시도해 보지만 성공은 커녕 오히려
더 강화된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 같지만, 다음 몇 가지만 이해하면 너무나
쉽게 -일시적 해결이 아니라- 근본에서 완전히 해소해 버릴 수가 있다.
첫째, [내] 스스로(自)가 아는 주체로서, 알려지는 객체인 그 어떤 마음(意識)과도
붙어 있지 않고, 서로 따로임을 확인해야 한다.
아는 주체인 [내]가 ,알고있는 것(객체인 意識) 일체가, [내]와 각각으로 있다고
알아야 그 의식계에 있는 기억속의 주인공이 내 자신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 하면, 주체로서의 [내] 스스로를 깨닫지 못 하고, 객체인 기억 속의 '나'를
[내] 스스로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마련이다.
둘째, 마음을 다루는 행위 주체인 [내]가, 다룰 대상인 마음중 그 어떤 것도
[내]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이다.
비유하자면, 공포영화를 보다가 컴퓨터를 끌(잠들) 수도 있고, 모니터 화면을
변경할 수도 있고, "그냥 공포영화이구먼.." 하면서 보거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몰입"에 머물수도 있는 것 중의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두려워 하는 '나'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일 이다.
자기 자신에 관한 온갖 의식중, "무섭다는 마음(畏意)이 연결된 한 개의 기억이나
상상(識)" 그 이상도, 그 이외도 아니라고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결코, 실제 그대로의 자기라는 사람이 아니고,
그걸 보고 다루어야 할 [내] 자신도 아니라고.
그래야 그걸 달래거나 격려해서 안심 내지는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
넷째, 두려워 하는 '상대'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 이다.
특히 그 '상대"에 해당되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힘이 강한지,
그걸 견제할 자기와 주변사람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그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 합리적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예컨대, 어린 시절에 힘이 센 개인이나 집단에게 오랫 동안 위협을
당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 지금은 전혀 그런 위협을 받을 일이 없거나,
있어도 자위 또는 법의 보호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공포에
떨던 어릴 때의 그 습성대로 지금도 기억만 되살아 나도 기겁을
하는 것이 바로 [트리우마]다.
더군다나, 기억이나 상상이라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에 말 하는
5온 중의 하나인 식(識)으로 "식즉시공(識即是空)공즉시식"에 불과하다.
너무나 작은 한 장의 사진보다 작은 것을 무서워 하다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