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그 정신이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병이
바로 이하에서 말 하려는 "다시 병"이다.
다시 보고"싶다" <- 호의적, 긍정적인 마음(意)이 연결된 정보(識)
다시는 보기 "싫다" ->惡意적, 부정적인 마음(意)이 연결된 정보(識)
이런 의식은 흔하디 흔하고, 병이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강도(强度)가 매우 커서 정신활동, 나아 가 생활에도
심각한 문제를 여기 하는 경우가 있으니 가히 "병(病)"이라 할만하다.
"(다시)보고 싶어(싫어)서 병이 날 것 같다, 병이 났다"라고 할 정도로.
다 그 정신이 어리석어서 빠지는 환상적인 함정이다.
그걸 밝히기 전에, 사람의 정신이 아는 존재현상에 다음 다섯 가지가 있다.
1). 오직 논리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실재계.
2). 감각적으로 접촉해서 알 수 있는 감각현상계,
3), 두뇌 속에 정보(識)와 마음(意)으로 구성되어 있는 의식계,
4), 두뇌 바깥에 언어와 문자 형식으로 있는 언문계(言文界)
5), 오직 스스로 깨달음(自覺)만으로 알 수 있는 [내](정신)
위의 2), 3), 4)는 5) [내]가 1) 실재계를 아는데 안내역을 하는
수단이고 도구 이상도, 이외도 아니다.
그게 아무리 정확하게 안내한다고 해도, 안내 자료일 뿐 결코,
실재 자체가 아니고, 실제 그대로도 아니다.
1)(실재계)과 2) 내지 4)의 차이는 너무나 크고 많지만,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다시(再)"는 있어도 [다시]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2) 내지 4)에는 "다시"가 무한정 가능하지만, 1)에는 [다시]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걸 제대로 이해한다면 걸핏하면 만나는 "다시"의 맛에 혹은 도취,
혹은 기겁하여 [다시]를 추구 또는 회피하려 발버둥 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있을 수 없는 "다시"(재방송, 재상영)에 불과하구나... 하고 알면서
있을 수 없는 [다시]를 "다시" 맛보듯 추구(또는 회피)하려는 바보짓을
할리는 없으니까.
수십 년 전 연인과의 정열적인 포옹, 그 순간의 쾌감이 돼 살아난다(재상영)
"저 때의 '나'는 저랬었구나(지금 이 [내]는 초연한 관찰자이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 '나'의 쾌감이 지금 [내] 느낌인 것처럼 착각, 혼동에 빠지면 [다시]를
갈구하게 된다.
그러다 [다시]는 불가능하구나... 하고 인정하면 정상으로 회복되고,
"그래도 다시 한번"에 빠지면 일탈을 하게 되고...
안내(위의 2 내지 4 )를 잘 활용하면 필요 유익하지만, 안내에 맹신 맹종하다
가는 불필요, 유해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 정도는 꼭 명심해야 하리라.
실제로 [다시] 일어나는 일은 추호도 없다.(변함없이 변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진리이다)
기억 속에 있는 이전의 일은 "다시" 떠 오르는 일이 허다하다.
두뇌 속 일과 매우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다시] 일어 난 일인 것처럼
오인할 수는 흔히 있다.
예컨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은 있을 수 없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만나다고 알고 있쟎은가?
기억인 "다시"가 투사, 투영되어 발생하는 환상적인 경험일 뿐 이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는 두뇌 속에 있어도, 두뇌 밖에 [다시]는 없다는 것을 알면,
다시 병은 걸리지도, 빠져 나오지 못 하지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