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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을 말로 전해 줌/ 말을 듣고 의식하여 앎.

나 아닌 내 2024. 12. 20. 11:46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에, 그 정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안다.
그 이상도, 이외도 모른다.

"그 밖에는 모른다"라고 알지 못하면 모르는 줄도 모른다.
다 안다는 듯 태연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영원불변의 진리랄까...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제 스스로는 알지만, "상대는 알까, 모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가
쉽다.

또, 상대는 알아도 "내가 모르는 것이 적지 않겠지"하기가 쉽다.
쌍방이 모두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상대에게 문의하여 학인한 다음에 상대가 모른다고 확인된 것만 대화로
소통하기로 합의한다면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불화가 발생할 일이 거의
없으리라.

쌍방 모두나 그 일방이라도 "누구나 아는 것만 안다"는 불변의 진리(?)를
모르고 [내] 스스로는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모른다면 그게 상대의 잘못이고 책임이라는 식으로 나선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불을 보듯 뻐언(明若觀火)하지 않겠는가.....

그 어떤 앎(知)이건, 그 사람의 정신인 [내] 앞에 떠 올라있는 의식(名, 識, 意)에
추호의 더도, 덜도 없다.

그 앎을 "지명의식(知名意識=무엇에 관한 정보와 평판을 안다)"이라 하건,
"지의식(知意識)이라 하건", 약칭하여 "지식(知識)"이라 하건 그렇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앎을 전달하려면 가장 보편적 일반적인 수단과
방법이, 제 두뇌속 의식(意識)을 "언어(문자)"라는 특수기호를 수단으로 전달하
고, 상대는 "전해 받은 특수기호(언어, 문자)를 풀이하여 의식화한 다음이라야
앎의 소통(전달과 수령)이 성립된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매개수단인 말(언어, 문자)의 뜻(두뇌 속 意識)이 쌍방에 공통
적이라야 앎의 소통이 완성되기 쉬운 반면에,
각 자의 말 뜻이 서로 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오해하는구나" 하면
상대가 "네 뜻은 어떤 것 인가?" 하고 묻고, 상대가 소위 "내 말 뜻은..." 하면서 정확히
알려주면 또 어떻게 진전될까?

가, 우리는 각자의 말 뜻이 다르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하고 포기하기.
나, 서로 각자의 말 뜻이 옳다고 언쟁을 계속하기.
다, 서로 다른 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같은 뜻이길 기대나 요구하지 않고 대화하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매하게도 서로에게 백해무익한 위의 "나"에 빠진다.
차라리 위의 "가"가 차선이지만 거들떠 볼 능력도 없는 것 같더라.
아마도 위의 "다"로 대화하기는 "말도 안 된다" 하리라 여겨진다.

더군다나 명시적인 말 형식조차 없는 말의 "의도"라는 것을 놓고,
심지어는 "너의 감추고 있는 그 뻔뻔한 의도를 내 모를 줄 알고!?"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경우도 적지 않더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