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바쁘다/심심하다, 시간(時間)의 정체.

나 아닌 내 2025. 4. 7. 18:04

"시간이 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한가하다",
"재미있다/심심하다",

위와 같은 소리들을 더러 입으로 내기도 하고 귀로 들이기도 한다.
모두 "시간(時間)"과 관련된 말 이다.

바쁜 /한가한 시간, 재미있는/심심한(재미없는) 시간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소리ㅣ인데, 그 뜻이 과연 뭘까?

먼저 "시간(時間)", 그 단어의 뜻이 뭘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시간이지" 라고 답하리라.
시간을 잘 안다는 대답같지만, 실제론 그 뜻을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기도 하다.

두뇌 속에 "시간"이건 "時間)"이건, "때(時)와 때(時)의 사이(間)"이건
그 사람의 두뇌 속에 "그런 소리"는 있어서 알지만,
그 실질인 뜻(意識)은 없어서 모르는 줄도 몰라서 나오는 대답이다.

"사랑? 사랑이 사랑이지", "행복? 행복이 행복이지", "행복? 불행의
반대가 행복이지" 하는 것도 같은 (동어반복인) 문답이다.

시간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사람에게 "이 것이 시간이구나 하고,시간을
경험하여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 보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알려지는 '것'이 될 수 없으므로 알 수가 없다.
"시간" 이라는 것도 존재하니까, 내가 아는 '것'이 될 수가 있다.

시간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두뇌 바깥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렇지만 두뇌 속에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것을 알고 말로 표현(?)한다.

결론은, "시(時)", "시간(時間)" 모두 오직 두뇌 속에만 - 의식적 구조물(관념)-
있어서 알고, 두뇌 바깥에는 그렇다 할만 한 것이 전혀 없어서 찾지도, 만나지도
못 한다고 확인된다.

시계를 아무리 자세히 정밀하게 관찰해 보아도 시, 시간을 발견할 수 없다.
시계의 초침이 1에 있을 때(時)와 5에 있을 때(時)의 사이(間)를 시간(5-1=4초)
라고 하는데, 그 시계의 표면이나 속, 초침의 어디에서도 시, 시간이라 할만한
것을 찾아 보시라.

아무리 찾아도 발견하지 못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안다고
말 한다.
바로, 그걸 보는 사람의 두뇌 속에 그렇게 학습받은 "시간관념"(의식적 구조물)이
시계를 보는 순간에 투사, 투영되기 때문에 그런 시간을 알고 말 하는 것 이다.

여기까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어떤 시, 시간도 그 순간에 자기 두뇌 속에 형성되어 떠 올라있는 그대로
말고는 없다는 것을 확ㅇ니하게 되고,
그런 다음에는 그런 시간관념(의식적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어서 활용하느냐는
스스로 하기 나름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나면, 내 스스로 시간관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도 있고,
두뇌 속에 형성되어 떠 오르는 그대로를 피종적으로 - 맹신, 맹종에- 빠질 수도
있구나....하고 차려서 알 수도 있으리라.

시간에 종속적인 정신일지, 시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신일지는 내(각 자의 정신)
스스로 깨닫기 나름이다.

여기서 잠깐 방향을 달리 하여
내가(사람의 정신이) 아는 '것(대상)'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1). 두뇌 속에만 '것'으로 있는 것.(두뇌 밖에는 전혀 없는 것)
2). 두뇌 바깥에 실제로 있는 [것]에 관한 두뇌 속 '것'

'시간'이라는 것은 위의 1) 두뇌 속 "의식적 구조물"로만 있고, 두뇌 밖 2)로는
전혀 없다.(시계 표면에도, 속 에도, 지구와 달의 운동ㄷ으 그 어디에도 없다)

"있는 시간/없는 시간", "많은 시간"/ "적은 시간", "유쾌한 시간/괴로운 시간"
등 그 어떤 "시간"도 그 사람의 두뇌 속에만 있다.

그 어떤 필요하고 유익한 시간도 [ㅐ]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를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그 어떤 불필요하고 유해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할 수 있을 뿐 모든 사람의 정신이 실제로 하는지, 안 하는지, 못 하는지는
그 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