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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함(내 行爲) / 미워짐(미움意識에 빠짐)ㅡ 그 구별.

나 아닌 내 2024. 8. 20. 11:13

소위 "그리움"이니 "미움"이니 하는 이름의 노래가 아주 많다.
대체로 소위 "사랑"이라는 것(意識)을 "이루지 못 해서", 이루었다가 "잃어서"가 그 이유일 뿐,
누구의 무엇이(행위주체), 누구(실존주체)의 무엇(삶)을 위(爲)하여 한다(行)는 목적이 없다.
"왜 그리워(또는 미워) 하느냐?" 하고 물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미워하지 않으리"라는 노래도 있고, "미워하며 사느니 그리워 하며 살리라"라는 노랫말도
있다.

그런데 "미워하건", "그리워 하건" 백해무익인 일을 과연 [내](그 사람의 맑은 정신) 스스로(自)
할까?
[내] 스스로는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듯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리움"이니 "미움"이니 하는 의식에 -그 의식속 주인공인 것 처럼- 빠져질(빠질)
뿐일까?

만약에 [내]가 스스로(自) 자기의 삶(人生)을 안전, 건강, 순탄, 조화, 효율적으로 운전해 가려는
근본목적(爲)을 굳건히 유지하고 일을 한다(行)면 그리워도, 미워도 하지 않으리라.
백해무익이니까.

반면에 [내]가 스스로(自) 깨닫지(覺)를 못 하고 위와 같은 본분(本分)도 모르고,
[내]게 알려지는 의식(意識)중의 '나'(我意識 속의 주인공)에게서 나오는 - "그리워", "미워"라는
푸념을 [내] 스스로 하는 줄 착각과 혼동에 -빠진 줄도 모르는 채로- 빠져있으면 "그리워("미워"도
같다) 안 할 수가 있겠는가?

할 줄아야, 안 할 줄도 안다.
"하기"와 "안 하기"는 상대적 언어(곧 마음)이지만, 선택이 가능해야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미 스스로 결정한 것 처럼 "하기"에 빠져서 해어나지 못한 정신상태에서, 따로
무엇이 나서서 그 "그리워(미워) 하기"를 그치고, "안 하기"를 택하겠는가?

불가에서는 한 사람 그대로를 -그 정신적 깨달음과 무관하게-
이미 [붓다](즉, 即身成佛)라고 한다.
또는, 그저 깨닫기(頓悟)만 하여도 다듬기(頓修, 漸修) 없이도 [붓다]라고도 한다.

한 사람인 [붓다]를 세 가지 몸인 법신(생명체), 응신(정신), 화신(의식)으로 구별한다.

"그리워(또는 미워)"라는 마음(愛意, 愛好心 또는 憎意, 憎惡心)과 연결된 자기 정보에
부여된 이름이 '나'(我)이고, 그게 바로 하나의 화신(化身)이고,

그걸 알고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하는 기관이 바로 응신(應身)인 이다.
당연히 [내] 스스로의 자유의지(自意)로, 그런 "그리움(미움) 의식"이 법신(생명체)에
필요 유익하다면 "그래 그리워(미워) 하기로 하자"고 선택하고, 불필요 유해하다면
"백해무익이니 안 하기(내지 하지 말기)로 하자"고 선택할 수 있고 마땅히 그리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 이상과 같은 깨달음을 못 하거나 하지 않으면 정신이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그런 혼돈과 암흑상태에서도 그 본질은 저 혼자 찬란히 빛나고 있지만 모를 뿐 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