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무엇을 지혜(智慧)라고 할까?

나 아닌 내 2012. 8. 24. 18:02

다음 두 가지 질문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첫째 "지혜가 무엇인가?"

둘째 "무엇을 지혜라 하는가?"

 

언뜻 보기론 단어의 배열만 약간 다를 뿐 이라고 여겨 진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자면, 전자는 지혜라는 특정의 뭔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그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 이고, 

후자는 불특정적인 다수 중에서 무엇을 특정해서 지혜라고 부르느냐(호칭)를 묻는 것 으로서 약간이나마 서로 다르다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 대답도 전자에 대하여는 단일의 대답만 허용되고, 후자에 대하여는 여러 개의 대답이 나올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지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지혜"라는 단어이다 하는 대답말고는 단일의 대답이 불가능 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무엇을 지혜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제대로 아는 능력이 지혜"라거나, "깨달은 사람의 능력이 지혜"라거나 할 수 있고,

 또, (사전을 펼쳐 보고서) "사물 이치 상황 제대로 깨닫고 그것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 생각해 내는 정신 능력"이라거나 할 수도 있다.

 

전자의 문답에서는 지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서의 무엇과 지혜는 무엇이다 하는 대답에서의 무엇이라는 말의 내용이 같아야만 한다.

그래야 문답의 내용이 같을 수 있기 때문이고, 이는 곧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정답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후자의 문답에서는 무엇을 지혜라고 하느냐를 묻는 사람이 특정한 대답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문답자의 대답이 서로 같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일 것 이다.

 

이 글의 제목 "무엇을 지혜라고 할까?"는 필자인 내가 지혜라는 단어의 뜻을 내 두뇌 속에 무엇(어떤 내용)이라고 의식해 놓을까 하는 질문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이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그 대답을 만들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이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대답이 서로 같건, 비슷하건, 너무나 다르건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서로 대화를 하면서 각자가 "지혜"라는 (각자 나름의) 뜻이 있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대화하는 동안만이라도 서로의 뜻을 하나로 통일하여 주고 받거나, 그리 하지 않으려면 각자가 자기의 뜻을 명백히 밝혀서 각자의 뜻대로 표현하고, 상대의 뜻대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이하 내 나름으로 "지혜"의 뜻을 내 두뇌 속에 형성해 두고자 한다.

지혜라 함은 "(사람의 정신인) 내가 본래 부터 가지고 있는 알기(知的 활동)와 연결되는 능력 일체"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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