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상처 아닌 것을 상처로 만들기.

나 아닌 내 2012. 9. 28. 18:26

감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무언가를 지칭하면서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칭하면

"아하, 저 사람이 저 것을 무엇(이름)이라 하는구나" 하고 확인하여 알 수가 있다.

그 것이 사람의 몸 속에 있는 것 이라도, 보조 기구를 사용하여 확인할 수가 있으면 알 수가 있다.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이름중에 보통명사라는 것이 있다.

그 중에 상처라는 것이 있고, 그 뜻에 두 가지가 있다.

(1) 몸을 다쳐 부상을 입은 자리. (2) 정신적, 또는 심리적으로 아픔 받은 자취라는 둘 이다.

 

몸을 다쳐 부상을 입은 자리는 감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니 누군가가 상처라고 지칭하면 타인이 그걸 상처가 아니라 할 일이 거의 없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정신적 또는 심리적으로 아픔을 받은 자취"라는 말의 뜻은 보편적인 것도 없고, 개별적으로 특정된 것도 없지 아니한가...

무엇을 (정신적, 심리적인) 상처라고 하는지 말 하는 사람도 정확히 모르는데 타인이 그런 말을 듣고 무엇이라고 알리오.

 

결론적으로 말 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위 (정신적, 심리적) 상처라는 것은 그 뜻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뇌 속의 이미지(識)중 아무데나 붙일 수가 있고, (붙인 것을) 떼어 낼 수도 있다"고.

 

극단적으로 말 하자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 심리적) 상처라 하는 것도 아니라 할 수도 있고, 세상 누구도 상처라 하지 않는 것도 상처라 할 수도 있는 것 이다.

(정신적, 심리적) 상처라는 말의 뜻이 사람들끼리 공통점이 있다면, 그 공통점이 있는 뜻을 가진 사람끼리는 뜻을 통(표현, 이해)하기 쉽겠지만, 각자의 뜻이 다르거나 상반되는 사람끼리는 -서로의 뜻이 다르거나 상반된다는 것 부터 이해하기 전에는- 뜻을 통하기 어려울 수 밖에.

 

사람의 두뇌속 이미지(識)에는 체험적 정보와 상상적 정보가 있고, 그 둘이 연결된 경우(가정, 추리)도 있다.

그 중의 어떤 정보에도 "아픔을 받은 자취"(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전혀 없으면서, 현실적으론 엄연히 있다.

여기서 "현실적"이라 함은 현실이 아니면서, 현실처럼 여겨지는 경우를 지칭한다.

비유하자면 꿈과 같다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속 어느 이미지(識)에서도 "상처"라는 자취를 찾을 수가 없지만, "상처"니 "아픔"이나 하는 비평어(意)가 부가된 이미지(識), 상처의식이 현실적으론 엄연히 있어서, 그 사람의 정신이 그걸 알고 남도 그 말만 들으면서도 그런 상처(의식)가 있는 줄 안다.

이런 상처(의식)이니 없다고 할 수도 없지만, 실제로 그런 "상처"라는 말 이외의 실질로서의 상처가 있다고 확인할 수가 없다.

이게 (정신적, 심리적) 상처는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고 하는 근거이다.

상처가 있다는 사람으로선 "상처"라는 말이 붙은 의식이 있으니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아무리 탐구, 모색해 봐도 상처라 할만한 것이 없으니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결국 정신적, 심리적 상처(이하 "상처"라 약칭한다)는 사람이 만들기(고치기, 부수기를 포함한다) 나름이라는 결론이다.

자기 기억세계의 무엇에나 "상처"라는 말을 붙이려고 하면 붙일 수 있고, 그걸 "큰(작은)", "끔찍한(사소한)" 이라는 말을 덧붙이거나 (덧 붙여 있던 것을) 떼어 내거나 할 수도 있고, 그런 말 일체를 떼어 내 버릴 수도 있다.

 

예컨대,자기의 두뇌 속에 "부모의 이혼은 내게 너무나 큰 상처"라 만들어 놓을 수도 있고, "자랑꺼리도, 부끄러움도, 아픔도, 상처도 아니다" 하고 만들어 놓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이리 저리 고치거나 삭제해 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 "삭제"라는 작업의 방법을 모르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도움 주고자 한다.

 

두뇌속의 이미지(識=상상, 기억, 추리, 연상등 모두 포함)에 비교 평가어(意)를 새로 만들어 붙이거나, 기존의 것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방법은 모두가 내 자신의 말로만 한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 놓자"하면 그렇게 만들어 져서 붙어 있고, "이걸 이렇게 고쳐 놓자" 하면 그렇게 고쳐져 있고, "이걸 없애 버리자"하면 없어진다.(빈말, 거짓말로 없애자 하는 것은 무효이지만)

 

내가 주체로서 하는 마음(意識)중의 비평어 즉 의미(意)놀음은 내 자신의 말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너무나 쉬운 일 이고, 그걸 모르면 내 스스로는 전혀 할 수가 없다.

남들에게서 부지불식간에 학습되어진 의미에 내 자신이 놀이개가 되는 것이 대부분의 중생적인 삶이고.

 

이상으로 실제로는 상처라 할만 한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아픔"이니 "상처"니 하는 말을 붙이는 일(주로 기억)에 그렇게 학습되어진 "아픔"이니 "상처"니 하는 말이 붙어서 그게 실제로 아픔이나 상처인 것 처럼 여겨질 뿐 이다.

아픔이라 하니 아픔인 것 처럼(같고),상처라 하니 상처인 것 처럼(같다) 여겨지지만, 그런 마음이 떠 오르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으니 무슨 아픔이고 상처인가.....

 

이제 마무리 하련다.

어떤 마음에 아픔이니 상처니 하는 말을 붙여서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겠으면(예:자기 강화를 위한 분발, 격려, 노력등) 붙이고, 그렇지 않은 아픔이나 상처는 실제로는 없다고 선언하고, 자기 인생에 해로움만 된다면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자기를 위해서 깨끗이 버린다 선언하라고.

 

상처를 치유하느니, 상처로 부터 해방되느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더라만 "상처", "치유", "해방"이라는 말의 뜻도 명확히 사용하지 못 하고, 그런 일을 할 자를 당신, 독자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의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앵무새처럼 말 소리만 듣고 내고 앵앵거리는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