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고, 없고도 없으면서 있다.

나 아닌 내 2012. 9. 28. 23:14

보편적인 언어 상식으로는 있음(有)과 없음(無)은 상반되는 의미어이다.

"내 눈 앞에 있는 저 소나무"에는 있음, 없음이 없고 내 기억 속의 그 소나무에도 있음, 없음이 없다.

지구를 포함하는 우주에는 그대로 있을 뿐, 특별한 무엇으로 있음도, 그 무엇의 없음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내고 듣고서- 사용하는 말에는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하여 "언제(시간), 어디(공간)에 무엇(시, 공적 합성체?)이 있다"는 것이 흔하디 흔하다.

흔하디 흔한 그런 말을 자주 접하다 보니, 그게 실제로 있는 사실 그대로인줄 여겨지게 된지 오래이다.

 

바꾸어 말 하자면 있음과 없음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표현하는 서술어가 아니라 사실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해 놓고, 그 것을 제 두뇌속 기억이나 상상과 비교하여 그 둘이 일치하면 있음이라 하고, 일치하지 않으면 현실에 없음(마음에만 있음) 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없다"는 말(상대적인 의미어)은 마음속에는 있는 그 무엇에 해당된다는 것이 있다고 알 수 없을 때 하는 것 이다.

결국 "마음에는 있어야 현실에 있다, 없다고 하고 마음에 전혀 없으면 현실에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가 없다"는 것 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사람이 알 수 있는 세상과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이 세 가지 차원으로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은데...

 

첫째는 내 두뇌속 의식계에 떠 올라 있는 의식만을 그 순간에만 안다.

둘째는 내 감각기관이 접촉하여 두뇌속에 형성하는 욋적인 정보만을 그 순간에 안다.

셋째는 내 두뇌속 어디에, 무엇으로도 알지 못 하는 세계가 있다.

 

위의 세 가지에다 내 자신까지 포함하면 존재계 일체(곧 대우주, 실재계)가 되고, 그 것을 두 가지로 구별하자면 내 자신(아는 주체)과 내 아님이다.

실재계에서 내 자신과 의식계와 현실계를 제외한 것이 미지의 실재계이다.

미지의 실재계가 -비록 사소한 상대적 차이라도- 넓으면 아는 것이 혐소하고, 좁으면 아는 것이 넓다는 뜻 이다.

가장 범위가 넓은 것이 실재계중 미지의 세계이지만, 사람에게 중시되는 것은 제가 아는 세계 뿐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살아가는 과정은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환경과의 만남이다.

 

이 정도까지 이해하게 되면 아는 일을 하는 내 자신의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책임이 막중한지를 깨닫기 쉬울텐데....

 

이제 이 글의 제목을 밝히고자 한다.

이 몸의 두뇌 속에 의식으로 있는 무엇이, 현실(감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범위)에는 없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엔 있을 수 있다는 뜻 이다.

현실에 없는 무엇이, 두뇌속 미지의 현실(상상)에는 있고, 내가 전혀 알지 못 하는 곳에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뜻 이다.

 

"죽은 누군가(의식)는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는 말과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면 그대는 어찌할텐가?

"내게 희망이 전혀 없다"는 말과 "내가 탐구하고, 모색하고, 사색하고, 사고하여 만들고자 한다면 그 어떤 희망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면 그대는 어찌할텐가?

"사람은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하고 최소한 남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내 하나만 잘 살면 그만이지..."하는 말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