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남의) 말을 알아 듣는다?

나 아닌 내 2012. 10. 10. 00:11

(남의) 말을 알아 듣는다,

(남의) 말을 잘 알아 들어라,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어라는 등등의 소리를 내기(하기)도 하고, 들이기(듣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뜻을 알기나 할까?

"말을 알아 듣는다"는 말이 "말을 알아 듣는다"는 말 이지 그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나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말 에는 다음 세 가지로 구별을 한다.

첫째는 내가 내 두뇌속 의식계에다 보내는 기록, 질문, 명령을 내용으로 하는 말 이다.

둘째는 내 두뇌속 의식계에서 -내게로나, 남에게로- 내어 놓는 말 이다.

셋째는 내 두뇌속 의식계로 들어 오는 타인의 말 이다.

 

위의 세가지 모두가

첫째, 물질적 현상으로는 소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 상호간에 약속된 기호형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 기호로 표현하는 뜻(意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위의 첫째, 둘째는 어느 정도의 근거리에 있기만 하여도 누구나 감각적으로 접촉하여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기능상 미숙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위의 셋째(뜻인 의식)는 그 사람의 두뇌 속에 있기 때문에 직접 접하여 알 길이 없고, 그 어떤 기호(음성이나, 문자)로도 표현할 수도 없고, 표현되지도 않고, 단지 표현된다고 가정될 뿐 이다.

예컨대 "코끼리"라는 단어(음성, 문자)의 뜻인 두뇌 속 "코끼리 의식"은 두뇌 밖에선 알 수가 없고, 글자 속에도 없지만, 글자로 표현된 것 처럼 가정될 뿐 이다.

바로 "두뇌속 뜻이 말로 표현되는 것과 같다"는 이 가정이 말의 효용이 됨과 동시에, 말의 여러가지 부작용을 일으키는 소지이기도 하다.

 

남의 말을 듣는다 함은, 귀를 통하여 두뇌 속에 울리는 녹음을 듣는 것 이다.

말로 표현된다고 가정되는 그 뜻은 말(소리, 글자) 자체에는 없으므로 들을 수가 없다.

들은 소리에 해당되는 뜻(의식)이라고 형성되어야 비로소 그걸 보거나 들을 수가 있다.

남이 전해 주지 않고, 전해 줄 수도 없는 말 뜻을, 말을 들은 사람의 두뇌에서 -뜻을 받아서 형성하는게 아니라- 조건 반사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남의 말을 듣고 내 두뇌 속에 그 뜻이 형성됨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이 짐작되리라.

첫째는, 남의 말을 들음과 거의 동시적으로 내 두뇌에서 그 뜻이 조건 반사적 조건 반응으로 저절로 형성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남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내 스스로 두뇌속에 그 뜻을 만들어 놓는 경우이다.

 

다시 한번 확실히 해 둘 것은, 그 어떤 남의 말도 그 뜻을 직접 내가 받아서나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들은 다음에 내 두뇌속에서 저절로 형성되거나  내가 만드는대로의 뜻을 내가 알 뿐이라는 것 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만든 남의 말 뜻은 내가 정확히 알 수가 있지만, 두뇌속(의식계)에서 자동 반응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뜻은 내가 정확히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이다.

 

사람들은 -두뇌속 의식계에서- 혼자서 궁시렁 거리는 말을 적지 않게 한다.

아주 드물게 자기 두뇌속에다 말을 만들어서 저장하기도 하고, 질문이나 명령하는 말을 주고, 그 대답을 받기도 한다.

남의 말을 들었을때, 그 뜻을 정확히 파악(사실은 추측이겠지)해 알려거나, 생활에 도움이 되겠금 뜻을 만들려거나, 생활에 불편과 장애를 초래하는 뜻을 고치거나 없애려는 사람은 극히 희소하다고 (나는) 본다.

 

남의 말을 알아듣는다, 들었다는 사람들은 그 남의 말뜻이 아니라, 제 머리속에서 형성된 뜻을 듣고 알면서, 남의 말 뜻을 아는 것 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내 아무리 그 에게 도움되게 하려고 기 쓰고, 애 써서 말 하지(글 쓰지)만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잔소리"라 들으니(읽으니) 그는 내 말을 들은건가, 제 말을 들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