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사람의)목숨은 고귀한가?

나 아닌 내 2012. 11. 24. 09:39

"사람의 목숨은 고귀한가?"

"고귀하다", "고귀하지 않다", "하챦다" 하거나 대답하는 그 사람의 마음대로다.

대답하는 그 사람의 마음대로라 함은, 역설적으로 대답하는 그 사람의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뜻 이기도 하다.

왜냐?

 

사람마다의 대답이 다르고, 누구의 어떤 대답은 옳고 그와 다른 대답은 그르다는 합의도, 법률도 없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옳고, (내가 옳다고 하는) 내 주장과 다른 주장은 그르다는 말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역설적으론 (내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타인들에 의하여) 그르다고 배척되게 아련이라는 것 이다.

 

살인자에 대한 사형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주장의 대립이 생기는 근원이 바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데 그 대립되는 그 두 주장에 등장하는 "살인"과 "사형"이라는 두 단어의 뜻을 다르다고 구별만 하는 것 인지, 같다고 동일시 하는 것 ㅇ니지 애매 모호하다.

또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고 여기는지도 -분명하게 말 하지 않으니- 알기 어렵다.

 

"사형이 살인과 같다(같은 뜻의 말 이다)"면 살인을 비난하면서 사형을 비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형이 살인과 다르다(그 뜻이 다른 말 이다)"면 사형을 살인과 같은 것 처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형이 살인과 같은 면이 있으면서, 살인과는 다른 면도 있다"면 살인과 같은 면의 사형은 비난해야 마땅하고, 살인과 다른 면의 사형은

그 나름대로의 뜻에 따라서 옹호해야 마땅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형(死刑)"이라는 똑 같은 두 글자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를 만나게 된다.

그걸 만나려면 그 단어의 뜻 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부터 알고 난 다음에 그 곳 에서 찾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찾아서 만난 다음에는 그걸 그대로 인용할지, 수정할지, 페기할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

 

"사형"은 본래의 순수한 우리 말이 아닌 중국문자 "死刑"이고, 그걸 우리 말로 번역(?)해 놓은 것이 사전에 실린 "죄인의 목숨을 끊는 형벌" 이고 그걸 두 글자로 압축한 것이 "사형"이기도 하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목숨을 끊을 죄"가 무엇이냐는 것 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살인(타인의 목숨을 끊음)이다.

그래서 옛 부터 "살인자는 사(사형)"라고 전해 왔다.

 

목숨을 끊음이 살인이라면, 사형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것도 엄연히 목숨을 끊음이니, 그 점(목숨을 끊음)에선 살인과 꼭 같다.

그냥 살인은, 상대방이 살인한 적이 있고 없느냐를 상관하지 않고 국가의 형벌권 집행이 아닌 살인을 지칭하지만, 사형은 중죄(그 중에 살인이 대표적이다)를 범한 사람의 목숨을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여 끊는 것 이라는 점 에서 다르다.

한 마디로 "무고한 사람을 제 마음대로 죽이는 것이 살인이고, 살인자를 국가가 처벌하는 살인이 사형이다" 할 수가 있다.

 

여기서 살인과 사형의 같은 면(목숨을 끊음)과 다른 면(국가적 목적 즉, 살인에 대한 처벌과 살인 예방을 위해선가, 아닌가)을 알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살인자의 목숨은 소중한가, 아닌가?

"사람의 목숨"이라고만 본다면, 사람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살인자의 목숨도 소중하다 할 수가 있다.

"살인자의 목숨, 다시 살인할 가능성이 많은 자의 목숨" 이라고 본다면, 소중한 타인의 목숨을 이미 끊은 바 있고, 이후에도 살인할 위험성이 많은 자의 목숨이라면 일반 사람들의 목숨과 같은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형제를 폐지하자는, 사형제를 유지하더라도 사실상 사형제도를 유명무실하게 운용하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근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의 생명이 고귀하다는 것 이고,

둘째는 오판(誤判)의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 이다.

 

내가 문제시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형제 전체가 옳으냐, 그르냐는 다툼에 빠져서, 개 개의 구체적 범인에 대한 사형이 타당하냐 아니냐를 검토하는 일은 외면하고 있다는 점 이다.

그래서 오판의 증좌가 뚜렷한 경우도 사형에 처함을 주저치 않는 법관이 있는가 하면, 명명백백한 증거와 임의로운 자백까지 있는 흉악범인에 대하여도 사형을 회피하는 법관도 있다는 것이 한심하다 못해 가소롭기도 하다.

 

근자에 사형을 과감히 시행하자는 주장이 어떤 대선 후보자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제목말고는 읽지 않았지만)

흉악범죄에 대하여 사형회피적인 법관의 판결에 다른 국민들의 고조된 불만에 편승한 것 같지만, 오히려 가소롭게도 여겨지는 것은 그가 적어도 도의적으론 일생 동안 고개를 수그려야 할 "가짜 인혁당원 구실 사형살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심리적 이중성, 그게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이고 유일한 해결책의 시초이다.

"내(가족의) 생명이 아니면 죽일 수도 있지" 하는 사람이,

"내(가족의) 털끝도 건드리지 마!!" 하는 의식구조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