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살기 위한 마음인가, 마음을 위한 살기인가?

나 아닌 내 2012. 11. 19. 20:16

사람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이미지(識=색성향미촉語 6가지)와 그에 부가되어 있는 비교.평가어(意=좋다, 나쁘다로 대표되는)를 합쳐서 의식(意識)이라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마음이라고 할 때, 의식(意識)중에서 의미(意) 부분을 지칭하는 수도 많다.

크다(작다), 아름답다(못 생겼다), 좋다(나쁘다), 가까이 있으면(가지면) 좋겠다(싫다), 가지고 싶다(싫다)는 등등의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말을 의미(意), 그 의미가 붙은 이미지를 의사(意思), 그걸 표현함을 의견(意見), 그걸 바람을 의욕(意慾), 그걸 실행하려는 충동(에너지)을 의지(意志)라 하기도 한다.

 

사실적 비교 언어(크다, 많다, 높다, 깊다 등등)와 달리 평가적 의미(意)에는 반드시 -음식에 맛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맛(味)이 있으니 그걸 의미(意味) 한다.

좋다와 그에 유사한 의미는 단맛 비슷하고, 나쁘다와 그와 유사한 의미는 쓴만 비슷하다는....

 

그 의미(비평어의 맛) 때문에 단맛이 느껴지는 것은 좋아하고, 가까이 하려고 바라고, 행하려고 한다.

반대로 쓴 맛이 느껴지는 것은 나쁘다 하고, 싫다고 멀리 하려고 바라고, 행하려고 한다.

그렇게 바라는대로 할 수 있고, 하면 바라던대로 실현되면 기쁘지만, 그리 할 수 없거나, 실행하여도 실현되지 않으면 불만과 짜증으로 괴롭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마음(의미적 작용)이 그 사람의 살아 감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해로움을 끼치느냐, 않느냐의 차원은 별개라는데 문제시 할 필요가 있고, 해답을 찾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 하자면, 의미대로 살아가는 길이 안전하고, 순탄하다면 의미대로 살면 그만이다.

만약에 의미대로 살려고 해도 그게 어렵거나, 비효율적 이거나, 삶에 부작용이나 역효과가 나거나, 주변과 불화, 투쟁하거나 위험에 처한다면 의미대로 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이 너무나 자주, 많이 발생할뿐만 아니라, 그 의미대로 살려고 하면 발생할 결과가 어떤 것일지를 사전에 미리 알아차리려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알아차리려 해도 쉬 알아지지도 않는다면 어째야 하는가?

이게 바로 일반적(추상적)인 의미라는 것의 정체 파악과 그 다루기의 문제이다.

 

사람이 제 마음에서 좋다고 하는 것만 가까이 두고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순조롭게 살아 갈 수가 있다면 문제가(해답도) 무엇이랴.

또, 제 마음에서 나쁘다고 하는 것을 멀리 하고서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순조롭게 살아 갈 수가 있다면 역시 문제가 무엇이랴.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어찌 문제삼고 해답을 만들지 않아도 그만이랴. 

 

사람의 정신인 내 자신은 이 사람의 삶을 욋적인 운전해 가는 책임자다.

그 운전상 필요한 도구로 냇적인 의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 의식중의 한 개인 마음(들)을 내 자신처럼 착각하여 그대로 바라고, 하고, 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로 인하여 자기라는 사람의 삶이 안전한지, 순탄한지, 조화로운지를 살피는 본분은 깨닫지도 못 한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