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克己復禮]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번역?)해 놓고 있다.
극기(자기를 이긴다)에 있어서 이겨야 할 대상인 자기를 "자신의 욕심"이라고 풀이(번역)해 놓기만 하고, 자기를 이길 자(자신?)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지는 생략되어 있다.
왜?
자신이 자신인데 어찌 지칭자와 지칭 대상이 (둘 이상으로) 다를 수 있겠느냐고?
자신이 하나라도 그게 뭔지, 적어도 자신이 아닌 것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정도는 해명해야 한다.
욕심과 구별되는, 욕심이 아닌 무엇이라는 정도로라도 설명해야만 그 자신이 욕심을 다스리려 나설 수 있지 않겠는가...
극기(자기를 이기기)가 쉬운 일 이라면 새삼스레 그걸 강조할 필요가 무엇이며, 그래서 얻을 실익이 얼마이겠는가?
극기가 어려운 일 이라는 전제가 깔린 바탕에는 바로 "(자기, 즉 욕심을) 이겨야 할 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무언의 고백(?)이 있다.
자기(욕심)는 알겠는데, 그걸 이길 자신은 알 수가 없어서 모르니 이길 자라고 나설래야 나설 수가 없더라는 고백이다.
그저 "욕심을 이겨야지, 이겨야지" 할 뿐, 왜 이겨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기게 되는지를 알지 못 하니....
극기복례, 반 인륜적 탐욕의 마음을 이기고 인륜에 부합되는 예의와 법도를 회복한다는 말, 그 얼마나 근사한가?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근사하지만 그 실속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말의 뜻, 그 중에서도 특히 해악적 탐욕을 이겨내야 할 자 자신의 정체가 애매모호하니, 이겨야 할 자(이길 주체)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바꾸고, 무효화하거나 격려할 수도 있는 내 자신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그런 일을 해야 할까?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찾으려 애쓴 "나"가, 그걸 찾는다고 헤맨 자 자신, 결코 딴 어디서도 찾거나 만날 수 없는 그 자신이니,
만날 수 없다고 알면 너무나 쉽게 만난 것과 같고, 만나기 어렵다면서 찾으면 영원히 못 만나는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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