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중극 문자로 宇宙라고 적는 단어의 통속적, 사전적인 뜻은 젖혀두고 내 나름으로 다음과 같이 정립해 보고자 한다.
우주라 함은 "무한한 바탕(宇)과 그 안의 모든 물질(宙)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여기서 무한한 바탕(宇)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 어떤 물질도 없는 완전히 텅빈 공간으로서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 이기 때문에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 늘어 나거나 줄어들지 아니하고, 깨끗해지거나 더러워 지지도 아니하는 것 이다.
또 우(宇)안에 있는 일체의 물질(宙)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 것이 초극미(超極微)의 것이라도 포함하는 뜻 으로서 입자, 양자, 전자, 중성자, 원자 등등의 단위는 물론이고, 기체, 액체, 고체, 생명체, 행성등 존재하는 일체를 포함하는 뜻 이다.
위의 뜻대로 보면 이 사람은 우(宇)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불변인 공간에 있는, 주(宙)라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로 큰 집에 일원으로 살고 있다.
사람들중에 "우주의 기원"을 연구, 탐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주"라는 말의 뜻 부터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다.
특히 여기서 제시하는 우주(宇와宙이 구별된)의 뜻에는 거의가 무지한 것 같다고 여겨진다.
위의 구별을 바탕우주(宇), 물질우주(宙)라 편의상 칭한다면 바탕우주는 논리상 시간적, 공간적으로 시작이나 끝을 도저히 상정할 수가 없으므로, 그 시작과 끝을 궁금해 여기는 것 조차 참으로 바보스런 짓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 시작을 이야기 하면, 그 (시적) 앞에는 그 것이 없었느냐 하는 질문이,
또 누군가가 그 끝을 이야기 하면, 그(끝) 이후에는 그 것이 없어지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고, 그런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겠금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
맑게 개인 여름 밤 하늘에 별들이 찬란히 반작이는 것을 보면서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질문을 하였더니 누군가가 "또 별이 있겠지" 하길래 "그렇다면, 그 다음(멀리)에는?" 하고 묻기를 하다 보니, 아무리 묻고 답해도 그쳐지질 않았던 기억이다.
시간적으로도 그렇다.
"별들이 떠 있는 저 하늘은 언제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태초에 생겼겠지" 하고 답한다면, "그렇다면 그 태초 이전에는 저 자리가 없었을까?"
"저 텅빈 하늘이 사라진다면, 그 자리엔 무엇이 있게 될까?" 하는 문답도 마찬가지다.
바탕우주와 달리 물질우주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시간적, 공간적 유한을 가정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 태초(최초에 생김)와 최후(완전한 소멸)를 논리적으로 가정할 수도 없다.
그저 "바탕우주(하나님, 부처님)가 물질우주(중생계)를 만들었다"는 종교적 가설이나 가능할 뿐, 논리적으론 상상조차 할 수가 없으므로.
여기에서 바탕우주의 성질을 신비하게 구성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필요적 의문을 가져 본다.
바탕우주가 순수하게 텅빈 바탕이 아니라, 그 자체에 처음부터 물질우주를 만들어서 품고 있는 능력이 있다고.
바탕우주를 "창조주"로 보자는 것 이다.
이런 가정이 없이는 무조건적 맹신이나, 무조건적 맹목으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바, 과연 무엇이 사람들에게 유익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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