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그치고(止) 생각(生覺)해 보기(觀)

나 아닌 내 2015. 2. 15. 11:23

관(觀), 보다, 본다는 말은 안다(知)는 뜻과 같은 경우가 많다.

들어 본다, 만져 본다, 맡아 본다, 맛을 본다 등등등....

 

생각을 生覺(생생한 각성)이라는 뜻 보다는 두뇌 속에 떠 오르는 상념(想念)과 같은 뜻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보편적인 용례 여하와 상관없이 여기서는 "내(이 사람 안에서 아는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정신) 스스로 순수한 각성상태에 머뭄"이란 뜻으로 정립한다.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냇적인 의식이라 하건, 욋적인 현상이라 하거)"과도 따로인 순수한 내 자신임을 깨달아서 잊지(不覺)않는 상태이다.

 

여기서 그치기(止)라 함은, 내 자신이 제대로 생각없이(내 자신으로선 혼미한 상태로) 어떤 대상(意識)을 내 자신인 것 처럼 혼동(錯覺)에 빠져있는 상태를 그친다는 뜻 이다.

예컨대, 죽고 없는 사람(?내 두뇌속 이전의 기억)에 관하여 희노애비(喜怒愛悲)가 두뇌 속에 발생했을 때 그걸 보는 내 자신이, 그걸 실제의 사실로 알고, 자신이 그 당사자(그 귀신?의 자식이나 배우자)인 것 처럼 착각에 빠져있다가, 그게 마음속 의식계에 불과하다고 알고 그치는 것 이다.

 

그치기(止)를 사이에 두고 그 이전에 착각(錯覺-내 아닌 것을 내 자신이라고 동일시 됨)이, 그 이후에 자각(오직 순수하게 아는 일만 하는 내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미리 밝혀둘 것은 내 자신으로서의 자각(깨달음)은 가능해도, 내 자신을 알 길은 없다)이 있게 된다.

이 자각중에 그 생생한 정도가 깊은 경지를 생각(生覺)이라 하고, 생각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일이 대상일 뿐 내 자신과는 분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고로 생각의 경지를 해탈이라 하기도 하고...

 

여기서 그치기(止)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해야만 깨달음의 문 앞에 이르게 된다는 것도 알기를....

그치기(止) 없는 상태로 마음(에)의 자유니, 초월이니, 깨달음이니, 해탈이니, 열반이니 아무리 갈구해 본들 "마치 눈 감은채 보자"는 꼴이다.

그치기(止)를 했다고 그냥 깨달음(覺)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이 무언지를 알려고 제 자리에서 헤매고, 그러다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찾는 내 자신이 자신을 찾을 수 앖는게 당연함을 알고 나면 비로소, 그냥 지금까지 내를 찾아서 찾고 헤메던 그대로의 내가 바로 언제나 이렇게 홀로였구나 하고 홀연 깨닫게 된다.

생생하게 깨달았다 해도, 어느 순간에 오랜 습성에서의 착각에 빠지기 쉬우므로 그치기(止)를 반복훈련해 둠이 필요하다. 

 

불교 스님중에 지관(止觀)이라는 법명을 쓰던 사람을 안다.

우리네가 스스로 인생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지생각관(止生覺觀:사념에 빠지기를 그치고, 스스로 생생한 각성을 유지한채 존재계와 의식계를 올바르게 관찰하여 알기)하여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