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 )이다.

나 아닌 내 2012. 10. 14. 11:30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 말(소리) 그대로-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동어반복식 문답이라고 한다.

형식적으론 대답처럼 하지만, 실질적으론 대답이라 할 알맹이가 없다. 

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내가 내지, 내가 나지, 내가 자신이지 하는 식의 대답도 그런 것 이다.

사랑이, 행복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사랑은 사랑이고, 행복은 행복이다" 하는 식도 그런 것 이고.

 

그래서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는 식의 질문 대신에, 명령의 형식으로 "다음 빈칸에 정답을 채워 넣어라,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          )이다" 하는 식으로 만든 것이 위의 제목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형식을 바꾼들 대답하는 사람으로선 그 괄호 안에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채워 넣을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다시 명령어를 만들어 "이미 설시된 문장과 그와 유사한 뜻이 있는 문장을 괄호 속에 넣지 말라"고 하여 딴 대답을 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이하에서는 그 (괄호) 안에 내 자신이 정답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채워 넣기로 한다.

그러기 전에 다음 몇 가지 문답을 나열해 보기로 한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은 ( 무엇 )인가?

(무엇) 이다.

 

내가 지금(부터) 알아차리기에 나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다.

 

내가 아는 일을 하는 본원은 (무엇)인가?

( 무엇)이다.

 

내 자신과 아는 대상과의 관계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가 피동적으로 알게 되는(대상이 저절로 내게 알려지는) 관계이다.

둘째는 내가 주도적으로 알려고 해서 (대상을 찾고, 만들어서) 아는 관계이다.

위의 두 가지를 비율로 구별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99% 이상을 첫째가 차지할 것 이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둘째를 10% 정도나 차지할까....?

 

요약하자면, 그저 알려지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첫째 유형에 가까운 사람들이고, 스스로 알아차리려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둘째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전자는 지식(知意識)적인 사람이고, 후자는 지혜(智慧)로운 사람이라 할만 하지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니......

 

무슨 사업을 해 볼까? 하는 질문을 자기 두뇌에 하면 이러 저러한 대답이 내게로 나오고, 그 것을 알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질문에 대답이 없다거나, 그 대답에 "신통챦다"는 판단이 붙어 나오고, 그 것을 알게 되는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에나 자기 두뇌와 어떤 문답을 하고, 어떤 자료를 입력하여, 어떤 결정을 도출해 내어서 아는 것은 내 자유이니, 내 책임이다.

 

이 사람(내 주인)의 삶을 안전, 조화롭게 영위해 가려면 내가 "마땅히"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에 빠져 있는 시간과 소모하는 에너지는 얼마나 되는가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