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365

지혜와 지식의 뜻 구별.

나 아닌 내 2012. 10. 31. 12:11

지혜, 지식 둘 모두가 한글 두 글자로 된 단어라는 점 에서는 -글자의 모양만 다를 뿐-  같다.

智慧, 知識 둘 모두도 중국 글자(한문자) 둘로 된 단어라는 점 에서 -글자의 모양만 다를 뿐- 같다.

 

그렇지만 지혜(智慧), 지식(知識)이라는 두 글자(단어)의 뜻은 그 글자들 모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글자의 듯 이라는 것이, 글자의  겉(모양)에도, 그 속에도, 그 주변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 단어의 뜻은, 어떤 사람의 두뇌 속에 그 단어의 뜻 이라고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만 그렇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의 뜻(그에 대한 답)은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전혀 다르다.

첫째, 지혜(지식도 같다)가 무엇이냐?

둘째, 무엇을 지혜라고 하느냐?

 

위의 질문에 등장하는 "무엇"을 같은 단어로 대입한다면, 그 질문과 대답의 뜻이 똑 같게 된다.

그렇지만 질문에 등장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과 대답으로 등장할 "무엇"으로 지칭하는 것이 딴 것이면 그 질문과 대답의 뜻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같은(하나의) 질문에 2인 이상이 대답한 경우에 "무엇"을 서로 다르게 "ㅇㅇ", "ㅁㅁ"이라고 대답했다면 뜻이 다르다.

 

사람들에게 "지혜가, 지식이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에, 질문자의 두뇌 속에 그 "무엇"에 해당되는 뜻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단어(글자나 말 소리) 이외의 뜻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묻는 경우도 있지만, 단어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단어만 형성되어 있고 그 단어에 해당되는 뜻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경우에, 그 사람은 그 단어의 뜻을 아는걸까, 모르는걸까?

 

결론만 말 하자면,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에 제 두뇌속에서 나오는 그대로를 알 뿐 이다.

"지혜"라는 말 소리만 알면서도, 그게 지혜라는 말의 뜻인 것 처럼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는 것 이다.

 

그들의 대답을 몇 가지 예시하면 "지혜가 지혜지", "지식이 지식이지", "사랑이 사랑이지", 정의가 정의지", 신이 신이지", "행복이 행복이지",

"애국이 애국이지" 등등 무수하게 많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어떤 단어(특히 비교적 평가어인 의미어=意로 약칭)의 형식만 알뿐이면서도, 그 형식이 곧 실질(뜻)인 것 처럼 오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줄도 모르고 언어생활을 하는 것 이다.

 

여기(이 글에)서 지혜, 지식의 뜻 이라고 적게 될 내용은 내 두뇌속에 내가 형성해 놓고 있는 것 이다.

그게 만인이 사용하는 뜻이 아니고, 만인이 사용하면 좋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이 글을 쓰는데 (압축용으로?) 필요해서 쓰는 것 이니, 독자는 이 글을 읽는 순간에만 "아하, 그런 뜻이구나..."하고 이해하면 족하고, 그 후에는 독자의 자유일 뿐이다.

 

지혜는 내가 스스로 자유롭게 의식을 다루는(만들고, 검토하고, 확인하고, 수정하고, 승인 또는 유보, 불승인, 무효선언등을 할 수 있는 본래부터의(소위 타고 난) 능력이다.

지식은 두뇌 속에 지금가지 형성되어 있는 의식을 알고 있는 상태이다.

 

의식을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느냐(지혜), 의식과 상대적으로 얽힌 것 처럼이냐(지식)

의식을 만드느냐(지혜), 만들어 진 의식을 아느냐(지식),

의식을 다루느냐(지혜), 의식을 따르느냐(지식),

주체로서 의식을 대하느냐(지혜), 노예처럼 의식에 매이(달리)고 묶이고, 갇힌 것 처럼이냐(지식)로 구별된다.

 

내가(사람의 정신이) 의식을 다루는 도구와 방법은 말로서 하는 질문과 판단, 명령이다.

사람의 두뇌에 들어 있는 말을 어(語), 그게 소리로 나오는 것을 언(言) 이라고 명명한다면, 내가 내 두뇌속에다 질문이나, 판단, 명령을 하는 것 만을 순수한 "내 말"이라고 칭할 수 있다.

입으로 소리가 나오게 하거나, 혼잣마로 중얼거리거나, 입술조차 꼼짝하지 않고 상상만의 말을 할 수도 있다.

 

위에서 비교한 지혜와 지식을 참고로 하여 특정 사람의 지혜로운 정도를 가늠내지는 측정해 볼 수도 있다고 본다.

사색, 진지한 사고, 신중한 검토, 날카로운 비교분석과 평가, 단정적인 결정 이전에 질문이 많은가를 보면서.

즉흥적 대답, 경망스런 언동, 안다는 자랑이 많고 모름을 부끄러워 하고, 배우기를 싫어하는가, 자유를 남용하고 책임을 회피하는가를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에 아는 것 만을 안다.

그 순간에 -모른다고- 더 알려고 나서는 것을 더 알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모른다고 아는 것은 자랑도 부끄러움도 필요없지만, 그 때 부터 포기(우매한 자)와 알기(현명한 자)로 두 길이 갈라진다.